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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란?

by 권 작가 2023. 8. 21.

 / Princess

본래는 중국 천자국에서 황제의 딸에게 내리는 작위이다. 전한 시대에는 황제의 딸을 공주로, 제후의 딸을 옹주로 삼았고 이후 당나라부터 청나라까지 공주님은 황제의 딸의 작위로만 국한되었다. 한국사에서도 내부적으로는 천자국의 격을 사용했기 때문에 선화공주 요석공주처럼 왕의 딸들에게 공주 칭호를 사용했다. 조선에서는 국왕의 딸들 중 정실 소생에 한해서만 주어진 작위였고, 후궁의 딸은 옹주라고 했다.

근현대 이후의 한국에서는 의 딸, 왕족 여성을 가리킬 때 대부분 공주라고 일컬으며, 외국의 왕족 여성에 대한 호칭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도 공주라고 한다. 최근 서브컬처 창작물에서는 왕녀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도 늘었지만, 공식적으로나 대중적으로는 공주를 가장 널리 사용한다. 사실상 이 단어 자체가 왕의 딸, 왕족 여성을 가리키는 공식적인 한국어 보통명사가 된 것이다.

옛날 중국에서, 대부분의 공주들은 거의 다 왕자들보다 결혼을 더 빨리 하는 편이다. 왕자가 더 나이가 많은 오빠 여동생인 경우에도 그렇다. 이는 남자는 나이가 몇 살이든 간에 숟가락들만 한 힘만 있으면 여자를 임신시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연하지만 왕자비의 나이는 10대 후반 많아도 20대 초반이 대부분. 또한 20세기 이전까지 어느 나라든 어느 문화권이든 여자는 10대 후반 많게는 20대 초반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공주의 자녀가 왕자의 자녀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프로이센 왕국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장녀(셋째)인 프로이센의 샤를로테(1798년생)가 낳은 맏이인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1818년생)는 차남(둘째) 빌헬름 1세(1797년생)의 맏이인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1831년생)보다 나이가 13살이나 더 많다. 다만 빌헬름 1세는 첫 사랑과 이별하고 몇 년 동안 결혼을 미루다가 결혼한 케이스다. 왕자들 중에서는 이런 케이스가 은근히 있다.

반대로 누나 남동생의 경우면 나이차가 더 많이 나서 아예 누나의 자녀가 남동생의 자녀보다 20살 이상 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헤센카셀의 루이제, 프리드리히 빌헬름 남매 중 루이제의 장남 프레데리크 8세(1844년생)는 루이제의 남동생인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장남 프리드리히 빌헬름(1854년생)보다 10살 위이며, 막내아들인 프리드리히 카를(1868년생)[2]보다 무려 24살이나 더 많으며, 5촌 조카인 크리스티안 10세(1870년생)과 겨우 2살 차이다. 왕이 그 딸을 제후(諸侯)에게 시집보낼 때 삼공(三公)에게 그 일을 맡게 한 데서 유래한다. 삼공(삼태사)은 일반적인 공작과 달리 친왕과 격이 같다. 즉, 공(公)이 혼사를 주재하는 혼주(主)역할을 했다 하여 '공주'가 되는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면 공주님의 높임말로 '옥주(玉主)'가 있으나, 실제 사용례는 거의 없다. 공주나 옹주에게 장가드는 것을 "상(尙)하다"라고 표현했는데 ‘尙'은 받드는 것이니, 공주를 받들어 모시는 것인데 감히 함부로 "장가든다"라고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반도에서 공주(公主)라는 작위가 군주 정궁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받는 작위로 정착한 것도 어디까지나 조선이 들어선 이후다. 그 이전에는 왕의 서녀 왕자님의 딸을 공주라 부르기도 했다.(ex: 진흥왕의 조카 만명공주)

현재는 입헌군주제를 실시하는 외국의 왕족 여성은 왕의 딸이든 왕자의 딸이든 모두 공주라 칭하는 어법(ex: 앤드루 왕자의 딸 베아트리스 공주)이 정착한 걸 보면 한 바퀴 돌아 원래 뜻으로 돌아간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는 Princess를 공주로 해석했기 때문이지 왕의 적녀를 제외하고는 아버지의 작위를 따서 '○○의 공녀'라고 하는 게 공식 칭호다. 베아트리스 공주 또한 결혼하기 전까지 아버지 요크 공작의 작위를 따서 '요크의 베아트리스 공녀'라고 불렸다. 윌리엄 왕세자의 딸 샬럿 공주도 아버지가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의 공식 칭호는 공녀이다.

공주는 임금의 딸을 일컫는 말인데, 임금의 대가 바뀌면 따라서 친족관계도 바뀌는 터라, 임금(선군의 아들])의 누이는 장공주(長公主), 임금의 고모는 대장공주(大長公主)로 불러 구분하기도 했다. 고려로 시집온 원나라 공주들에게서 이런 칭호를 볼 수 있다.(ex. 제국대장공주, 계국대장공주,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노국대장공주) 조선에서는 임금의 누이나 고모를 따로 장공주, 대장공 주로 부르지는 않았고 조선 이전에는 장공주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신라 경문왕의 누이인 단의장옹주라던지, 진성여왕도 즉위 이전에는 의 누이인 북궁장공주(북궁은 진성여왕이 즉위 전 거처하던 별궁)로 불렸으며, 고려 현종 배다른 누나 안종의 본처 소생 딸인 성목장공주도 있다.

즉 왕의 아들인 '왕자'의 범위 안에 왕비의 아들 대군 후궁의 아들 이 들어가고, 왕의 딸인 '왕녀'의 범위 안에 왕비의 딸 공주와 후궁의 딸 옹주가 들어가는 것이다.

공주는 동아시아의 궁중예법에서는 군주가 임명하는 직책에 가까운 개념이다. 임명해주지 않으면 개인의 이름은 있을지라도 공주나 대군 등으로 불리지 못한다. 태종실록에도 "3살 된 왕녀가 졸(사망)하다"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때도 저 왕녀는 아직 임명을 받지 못했으므로 실록에도 그냥 왕녀라고만 기록됐다. 왕자나 왕녀를 대군/군, 공주/옹주로 책봉할 때도 교서를 반포함으로써 형식을 갖춘다. 왕자, 왕녀는 아직 책봉을 받지 못한 왕의 자식들까지 모두 가리킬 수 있는, 의미 범위가 가장 넓은 말이다. 또한, 공을 세운 여성이나 귀부인, 후궁 등을 옹주로 봉작하기도 했다.

현대인들은 공주/옹주와 왕녀의 개념을 혼동하여 거의 구분 없이 사용하고 있고, 사실 과거에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그렇게 엄격하게 구분했지 일상생활에서는 종종 혼동하던 예를 볼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사관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죽은 왕녀를 옹주로 기록해 놓기도 했다. 공주/옹주 봉작은 어느 정도 나이가 차서 혼인하기 직전 정도라고 해봤자 10살 전후에 이루어지므로, 어려서 죽었다면 옹주가 되었을 리가 없다. 조선의 사대부들이 주고받은 편지에서 새로 왕실에 태어난 아기씨가 공주인지 대군인지 궁금해한다든지.

왕녀는 혈통으로 결정되었지만 공주나 옹주는 왕이 인정하는 작위와 비슷한 개념이었기 때문에, 본인이나 가족의 죄에 휘말리면 공주/옹주 직첩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죄에 연루되어 작위를 박탈당한 예로 인조의 서녀인 효명옹주, 영조의 서녀인 화완옹주가 있다. 이 두 사람은 옹주 작위를 박탈당한 이후 각각 그 남편의 이름을 따서 '○○의 처'라고만 불렸다. 따라서 본래 프린스의 여성형인 프린세스와는 완전히 동일한 단어는 아니다. 다만 프린스/프린세스 역시 작위명으로도 사용되므로, 통하는 면은 있다.

일본은 한국, 중국과 달리 공주라는 단어를 잘 안 쓰고 그냥 황녀, 왕녀라고 한다. 흔히 일본어의 히메()도 공주로 번역하곤 하는데, 고귀한 아가씨나 작고 귀여운 여성에게 붙이는 미칭으로 공주보다 범위가 훨씬 넓다. 정작 일본에서 자국의 황녀에게 붙히는 호칭은 내친왕(內親王)/여왕(女王). 천황의 딸과 손녀까지는 내친왕, 증손녀부터는 여왕이라 부른다. 남자는 친왕/왕. 1947년에 오늘날의 황실전범이 제정되기 전에는, 4대손까지를 친왕/내친왕이라 부르고, 5대손부터를 왕/여왕이라 불렀다.

중국에서는 정략적인 이유로 외국에 시집보내는 공주들을 화번공주라고 했다. 진짜 공주만 화번공주로 뽑혔던 것은 아니고, 귀족의 딸이나 심지어 궁녀 중에서 선발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흉노에게 시집간 한나라 왕소군, 돌궐로 시집간 수나라 의성공주, 토번 손챈감포 왕에게 시집간 당나라 문성공주 등이 있다. 원간섭기 원나라는 공주들을 고려 왕에게 시집보내 고려의 왕비가 되게 했다. 이렇게 시집간 공주들은 총 7명으로, 충렬왕 제국대장공주, 충선왕 계국대장공주, 충숙왕 복국장공주, 조국장공주, 경화공주, 충혜왕 덕녕공주, 공민왕 노국대장공주이다.

정식 황제국이나 외왕내제 국가들에서는 경칭을 전하라고 했고, 조선에서는 자가라고 칭했다. 대한제국이 성립되고 나서는 친왕과 동급인 '공주 전하'로 호칭이 격상되었겠지만, 그 칭호를 받을 인물이 없는 채로 경술국치에 이르렀다. 한국사 최후의 공주는 순조 순원왕후 김씨의 딸인 덕온공주다. 1873년에 고종 명성황후 사이에서 적통 왕녀가 태어났으나 정식으로 공주에 책봉되지 못하고 일찍 죽었으므로, 정식으로 공주로 봉작받은 사람은 덕온공주가 마지막이다.

공주들의 삶은 디즈니 프린세스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서 아주 화려하게 그려지기에 좋아만 보이지만, 이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과장과 허상도 어느 정도 있다. 과거 전제군주제가 기본 베이스였던 고대~근세의 대부분의 공주들은 그리 평탄치 못한 일생을 보냈으며, 그나마 화려한 삶을 살고 있는 경우는 오히려 입헌군주제 하에서 반쯤 무형문화재 취급을 받고 있는 근대, 현대의 공주들이다. 실제로 세계 여러 나라의 왕실이 폐지되거나 왕실이 권력을 잃고 입헌군주국으로 전환된 근대시대부터, 공주를 포함한 왕족들은 그나마 전쟁의 공포와는 동떨어진 안온한 삶을 살았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도 왕실의 예절과 따라야 하는 이들의 생활 특성상, 부유하고 호화롭게 사는 건 확실하지만 겉보기에 화려할 수는 있어도 자유로운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과거의 상황에 비할 바는 못된다. 기본적으로 왕권을 강화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시대였으므로 왕의 권력에 대항할 수 있다면 아예 싹을 잘라버려야 했기에 부마의 가문인 공주의 시가는 외척이나 대군의 처가 다음으로 집중 견제 대상이었다. 공주들은 정치 암투 속에서 남편을 잃는 일이 허다했으며, 남편의 명운이 다하면 본인 역시 강등되거나 유배당하는 등 험난한 여생을 보내야 했다. 기본적으로 공주를 비롯한 왕녀는 시가가 역모에 연루되더라도 그 신분을 보장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사실상 안 지켜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더욱이 아버지나 어머니가 쫓겨나는 경우에는 노비로 전락하거나 사약을 받기도 했다.

결혼 역시 자기가 원하는 상대와 하는 일은 정말 드물었고 [3], 백이면 백 권력을 다지기 위한 정략결혼뿐이었다. 남성 위주의 봉건사회에서 본인의 의사를 내세우지 못하고 이래저래 치이기만 했던 셈이다. 심지어 유럽 왕실의 경우, 공주들을 외국 왕실에 시집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나마 결혼이라도 하면 다행이지, 공주의 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유력 가문을 만들면 이래저래 피곤하다는 이유로 평생 독신으로 늙게 하거나 수녀원으로 보내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나라가 멸망하거나 왕조가 교체됐을 시에는 당연히 왕족의 신분을 잃고 노예나 천민으로 전락하여 비참한 삶을 사는 경우도 있다.